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8,000미터 16좌 완등을 기록한 수많은 극한 상황과 죽음을 넘나들며 도전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가 계속 성공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38번의 도전 끝에 18번을 실패하고 20번 성공하였다.
계속 도전했기에 가능한 성적표이다.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히말리야 800미터 고봉.
하지만 아직까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올라야 할 산이 많으며 더 배워야 할 것이 수도 없다면
낮은 목소리도 이야기 하는 엄홍길 대장.
그를 강연회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강연이 열리는 곳은 외대 대학원 4층 411호이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에 엄홍길 대장님이 오셨다.
이전에 방송에 출연했다고 오는 길이라서 늦었다면 강연을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강연노트를 통해 그의 도전스토리를 듣어보도록 하자.

산과의 운명적인 만남
처음 첫 마디, 산에 올라가는 것에 인생을 다 바친 사람이라 강연하는 것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전을 통해 내가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고성이다. 어릴 적에 서울 도봉산 중턱으로 이사하면서 산과의 운명적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는 부모님을 무척 원망했다. 초등학생이 되고 학교를 가려고 하니 못해도 40~50분 걸어서 갔다와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우나 추우나 비가 와도 학교를 가는 방법는 걸어서 가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부모님이 등산객을 주 상대로 한 장사를 하며 생활하였는데, 이 때가 그의 나이 3살이었으므로 자연 속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부모님 원망을 하다가 어느 순간 산이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암벽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다른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엄홍길은 평지를 오래 걷는 것보다 산길을 오르는 것이 더 즐겁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내에 있는 산이라는 산은 다 다녔다. 국내에 있는 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한 것이 히말리야였다.
8000미터 히말리아 첫 도전
1985년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8,850미터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시작부터 목표를 높게 잡았다. 전문적으로 산악을 하기 위해서는 팀을 구성하게 된다. 대원이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식량, 촬영, 의료 등등으로 나누게 되는데 팀원을 구성하고 나니 누구 하나 경험도 없었다.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주위에서는 말렸다.
다들 부정적이었고 안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엄홍길 대장은 '할 수 있다.'라고 자기를 암시했다. '설악산의 4배 높이인데 여기는 못 등반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산을 탈 때는 혼자라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이 안일하게 생각했을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해야 하고 '나'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에베레스트'였던 것이다.
모두 실패를 예상하였고 안 될 것이라 하였지만, 엄홍길은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며 못할 이유가 없다,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로 동료를 믿으면서 맡은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개인주의, 무사안일주의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8,000m가 넘는 산을 오르는 일인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홀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친 사소한 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작은 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에베레스트는 절반은 네팔, 절반은 중국 티벳령이다. 이곳을 마음대로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네팔이나 파키스탄 산악 관광청에 서류를 접수하고 입산료를 내야 한다. 5명 기준 8천만원.
엄청 비싸다. 깜짝 놀랐다. 8천만원이 있어야만 목숨 걸고 히말리아를 등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정부의 허가서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엄홍길 대장님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며 만약 이를 어겼을 때는 벌금이 부과된다고 하였다.
등반을 위해서는 최소한 두 달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장비와 음식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말리아 오지에서는 사소한 것조차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를 해 가야 한다. 귀 후비개부터 시작해서 이쑤시개 등까지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하다보면 짐만 3~7톤 정도 된다. 여기에다 수송비와 체제비, 임산료까지... 등반 한번 하는데 있어 억단위 돈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아무런 경험이 없는 대원들과 함께 간다고 했을 때 다 부정적이고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목표에 대해 하나가 되었기에 에베레스트로 출발하였다.
짐을 실어와서 통관 절차를 거치고 나면 다시 30kg식 무게를 재서 싼다. 이를 차량을 통해 베이스캠프에 가까운 곳에 내려주는데 거기에서부터 걸어서 10~15일 정도 걸어올라가야만 4000~5000미터 위치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짐 이동수단에 대해 엄홍길 대장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크게 사람, 동물(야크, 당나귀), 헬리콥터 등이 있다. 대부분 베이스캠프까지 헬리콥터로 한 시간만에 이동시키면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1000미터와 5000미터는 다르다. 갑자기 고도가 높아지면 신체적으로 과부하가 일어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고산증에 걸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짐을 헬리콥터로 이동하기보단 걸어서 서서히 적응하면서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10~15일 정도 걸려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동물 역시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포터(현지에서 짐을 운반해 주는 인부)를 고용하게 가게 된다. 이들의 하루 임금은 우리 돈으로 2만원이다. 그 적은 돈을 받고 숨쉬기도 고통스러운 길을 하루에 30~40km미터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짐꾼의 삶을 살아간다. 여자 포터들도 많다. 이들은 60~70kg이라 되는 짐을 머리띠로 매고 히말리아 속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있어서는 등반을 하는 것이 하나의 도전이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 자체가 삶이다. 매일 무거운 짐을 싣고 생사를 넘나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소박한 만족을 느낀다는 인부들... 이들의 이야기를 듣으면서 행복과 성공이라는 것이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나라는 사람이 포터로서 평생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첫 등반 15일 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장대한 히말리아가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이 곳을 오르기 위해 준비한 것을 생각하며 모든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었다. 참담히 실패하고 내려왔다. 히말리야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세계는 어마어마했다.

99%의 절망과 1%의 희망
1986년 겨울 1년만에 다시 도전했다. 히말리아에도 계절이 있다. 겨울이 엄청나게 춥다. 겁도 없이 가장 어려운 것에 도전한 것이다. 도전하기 전에 실패 원인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나는 훈련을 하였다.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했다.
7800미터에 도달했을 때였다. 앞으로 10일 후면 정상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장비와 식량을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텐트에서 기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셀파가 추락한 것이다. 줄타고 내려가자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용기가 꺽이고 몸이 작아지고 숨도 못 쉬겠다. 깍아지는 절벽은 끝이 안 보인다. 공포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산소를 운반하던 동료가 추락하여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첫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과 산에 대한 두려움에 산을 포기하려 하였다.
산이란 존재가 원망스럽게 저주스러웠다. 산을 내려올 때 마음에서 난리가 났다. 죽은 셀파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결혼한지 3개월 밖에 안되었던 것이었다. 산에 정말 싫어졌다. 괴로웠다. 절대 산은 안간다고 그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꿈틀거렸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상을 올라가고 싶었고 꼭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일을 찾으려 하여도 산에 대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고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1988년 가을 3번째 도전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다른 루트로 갔다. 두번의 실패를 경험한 뒤 더욱더 철저히 준비를 했다. 결국 최고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성공의 감격. 환희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상에서 바라본 네팔은 구름 바다로 황홀함 그 자체였고 반대편 중극 티벳의 황량한 흙모래 사막이 펼쳐져 있어 또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하였다.
그 때 엄홍길 대장은 '이렇게 도전하니 되는구나. 두 번의 실패를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성공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히말리야 14좌 등정의 꿈
그 후 6번 계속 실패했다. 동상에 2번 걸려 발가락 일부를 자르게 되었다. 후회가 되고 괴로움, 속이 부글부글 끊었다. 이 시기의 실패의 원인을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다.
'이번에 기필코 성공하겠다.'식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올라가기보다는 '이번에 또 실패하면 안되는데 다른 동료에게 미안할텐데...' 시각부터 부정적이었고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베이스 캠프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진다. 대부분 대회의 주제는 '산'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위 사람들은 우리를 우습게 봤다. 가장 높은 산이 한라산 1,950미터인 반면 유럽의 경우 3~4,000미터의 산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의 엄홍길은 14개 봉우리를 전부 정복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4좌 등반한 사람은 3~4명 밖에 안되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저 그 산이 좋아서, 히말라야가 좋아서 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1995년 봄. 엄홍길은 한번 도전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바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이 그것이었다. 다혈질이면서 화끈한 것이 비슷한 스페인. 스페인 출신의 후안이토는 엄홍길과 궁합이 잘 맞았다. 남미 6950미터 안데스 산맥을 올라가면서 후안이토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엄홍길에게 14좌 등반팀에 들어오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한 것이다.
장비나 돈 걱정하지 말고 그저 몸만 가지고 와서 함께 등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8천미터 원정을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못 올라갈 것이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여전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안주하고 싶은 마음. 국적이 다른 동료와의 불화가 우려되었다.
용기가 안 생겼다.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국제 전화를 걸고 네팔에서 보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스스로 약속한다. 첫째는 희생. 팀에 합류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동료들을 위해 팀을 위해서 무조건 희생하겠다. 둘째는 긍정적 마인드. 누구보다 앞서가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다짐한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대원들이 힘들다고 할 때 짐을 지고 독려하며 올랐다. 먼가 보이지 않는 막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지만 마지막 고지에서 실패를 거듭하였다. 50여일동안 두 번의 실패 후 회의를 열었고,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등반팀 대장이었던 후안이토는 동료들을 모아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다른 스페인 대원들도 모두 이에 수긍했다. 그러나 엄홍길은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그도 지치고 힘든 두 차례의 실패 속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들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고갈된 상태였다. '내려가자. 쳐다보기도 싫다.'라는 입장이었다. 대장이 내릴 때였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모든 실패의 원인은 자신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홍길은 정상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한번' 대원들은 어쩔 수 없었다. 3번째 시도만에 정상에 올라갔다. 만약 2번 실패하고 내려갔다면 앙금이 쌓였을 것이고 앞으로 함께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 2번 실패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할 수 있다, 나도 한번 해보자'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이후 5번의 등반을 함께 하였고 모두 성공하였다. 엄홍길은 대원들에게서 조직력과 철저한 계획성을 배웠고 대원들은 엄홍길에게서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배워갔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2000년 7월 31일. K2 봉우리 끝에 서며 16년간의 꿈을 이루었다. 6년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면서 아름다운 말 '도전'
2005년 8천미터에 성공하면 15번째 이루게 된다. 2007년 5월 31일 16좌 8400미터 요체샤르 종지부를 찍고 성공하게 되었다. 2007년 5월 31일, 산악인 엄홍길는 새 역사를 썼다.
히말라야의 로체샤르(8400 m) 정상에 오름으로써 ‘세계 최초 16 좌(8000 m급 봉우리 14 좌 + 얄룽캉, 로체샤르) 등정’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 그는 4 번의 도전 끝에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험난한 산으로 알려진 로체샤르 꼭대기에 발을 디딤으로써 20여 년 넘게 꿈꿔 왔던 것을 마침내 달성했다.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히말리야에서 10명의 동료을 잃었다. 믿겨지지 않는다.
절대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엄홍길은 동료들의 희생을 생각한다.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하면서 10명의 동료를 잃었지만, 그들과 함께 오른다고 생각하였고 그 결과가 현재이다.
무수한 실패와 사고, 희생. 안나푸르나는 심지어 4번 실패하고 5번 만에 올랐다. 엄홍길은 동료 세 명을 잃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정상에 오르기까지 큰 대가를 요구하는 산이다. 3번의 실패 후, 4번째 도전에서는 그 스스로도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다. 7500m지점에 도착하였을 때, 그에게 욕심이 생겼다. 오만해지고 경계를 늦추게 되었으며 긴장은 이미 다 풀어졌다. 약 300m가 남았을 무렵, 동료로부터 크레바스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번 건너봐 하는 순간 동료가 사라졌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아, 또 희생자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찰나의 순간 엄홍길도 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줄에 엉켜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다리를 빼내어 보니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상이 눈앞이니 또 욕심이 생기고 실수한 동료를 나무랐다.
하지만 엄홍길은 실수의 근본적 원인은 그 스스로에게 있으며 과욕을 부려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리가 다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서야 4번째 도전이 실패임을 인정하였다.
다친 다리를 끌고 내려오면서도 안나푸르나에 대한 원망을 하였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기고 미끄러지면서 내려왔다. 고통스러운 날이 반복되었다. 다리에 대한 감각이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그 와중에도 안나푸르나에 대해 꼭 오를 것을 맹세하였다.
경희대 의료원 후송 후, 뼈가 두 동강이 나는 큰 골절상을 당했음을 확인하였고, 대수술 후 앞으로 산에 못 가는 것은 물론 뛸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엄홍길은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도봉산을 바라보면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5개월간 재활에 전념하여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10개월만에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고통스럽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과 자신은 불가분의 관계이라고 하였다.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였다. 목숨걸고 해야 만 한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내 자신'이었다.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내 자신을 이겼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면서 아름다운 말이 '도전'이다.
그가 좋아한다는 ‘심상사성(心想事成ㆍ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이라는 말이 실현된 셈이다.
마지막에 엄홍길 대장은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라고 말하였다. 즉,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하며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산에 오르면 그곳엔 산이 없고, 산을 내려온 후에 비로소 산이 보인다'라고 이야기 하는 엄홍길 대장
그가 우리들에게 존경받고, 롤모델이 되는 것은
아마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한 모습들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갖고 가슴뛰는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강연노트를 마무리짓고자 한다.

엄홍길의 히말라야 8,000m 등정일지
1988년 9월 에베레스트 8,848m
1993년 9월 초오유 8,201m
1993년 10월 시샤팡마 8,027m
1995년 5월 마칼루 8,463m
1995년 7월 브로드피크 8,047m
1995년 10월 로체 8,516m
1996년 5월 다울라기리 8,167m
1996년 9월 마나슬루 8,163m
1997년 7월 가셰르브룸Ⅰ 8,068m
1997년 7월 가셰르브룸Ⅱ 8,035m
1999년 5월 안나푸르나 8,091m
1999년 7월 낭가파르바트 8,125m
2000년 5월 칸첸중가 8,586m
2000년 7월 K-2 8,611m
2004년 5월 얄룽캉 8505 미터
2007년 5월 로체샤르 8400 미터
2009년 4월 27일 월요일 외대 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