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꽉과 함께 이대에서 열리는 박경림 강연회를 갔다. 우리는 강연이 5시에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20분전쯤 강연이 열리는 학관으로 이동하였다. 길게 학관 건물 밖까지 이어지는 긴 줄, 설마 이 긴 줄이 강연회 보러 온 것은 아니겠지?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정도는 아닐거야. 분명 수업이 끝나기에 많이 몰려 있을거야라고 생각한 가군.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원래 강의가 진행되는 강의실에서 수업이 있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콘서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 줄과 기다림. 참으로 박경림이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TV에서만 보는 그녀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녀에 대한 기분좋은 만남을 위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꽉이 가군에게 '과연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CEO가 와서 강연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긴 줄...5시에 강연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주최 측의 미숙한 진행으로 결국 5시 20분되서야 강의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500석이 넘는 강의실은 꽉 찼고, 서서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700~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박경림 강연을 보러 온 것이다. 미숙한 진행으로 모두 기다리게 하고 한꺼번에 들어가게 하여 출근길 지하철타는 타는 기분을 이날 느꼈다. 정말 이렇게 강연주최하면 좋은 강연하더라도 욕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5시 반 주최측 사회자의 소개를 시작했다. 강연을 준비하게 된 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그 가운데 배움을 얻어 이를 통해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큰 열정을 지니고, 그것을 인정받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봄으로서 우리들 내부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박경림을 초청한 것이다.
결혼식 하객만 2천여명에 달하는 연예계 대표적 마당발의 주인공인 박경림이 드디어 등장하였다. 강연장은 인기가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로 번쩍였다. 힘찬 발걸음과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만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인맥관리 비법들이 공개되었다.
인연 그리고 지금
2000년부터 해마다 이대에 강연을 오게 되었다. 몇 년 전에도 여김없이 강연을 하게 되었고 강연이 끝나자 어느 여학생이 달려와 자신이 PD가 되겠다고 하며 쪽지 하나를 건내준다. 꼭 나중에 보라고 하면 건내준 쪽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쪽지를 보니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우연히 이대에 올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그 학생이 떠올랐다. 쪽지를 찾아 그 학생한테 연락을 하게 되었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그 당시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후 연락이 두절되어 2년간 유학이 가게 되었고 시간이 흘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만나자라는 것이다. 내일 왜 만나냐하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다음날 섹션 TV를 녹화하는데 그 여학생이 있는 것이다. 그 여학생은 자신이 하고자했던 PD가 정말 되어 섹션TV 조연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인연이 되어 연락을 하며 지낸다. 몇 년간 이 여학생이 꿈을 이루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본인 역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박경림은 건물을 들어갈 때 가장 처음 보는 것은 '경비 아저씨'이다. 경비 아저씨를 보면 그 회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 아저씨가 밝고 웃는 모습이라면 그 곳의 이미지도 그렇고, 그 반대이라면 부정적인 것이다. 바로 강의후 우연히 만난 그 여학생과의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지듯 이대는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다.
불시착 그리고 어린 시절
“사람 좋은 아버지는 두부 공장을 하며 여유롭게 살다가 친구에게 빚보증을 서 전 재산을 다 날려먹고는 할리우드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셨다. 그리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시절 내내 우리 가족은 늘 인형에 눈을 붙이고, 봉투에 풀칠을 하는 부업을 하며 살아도 항상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월남전 상이용사이신 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으셔야 했고, 자식 넷을 키우기에도 벅차신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집에서 봉투 붙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하실 일도 없었다.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집안에 입 하나 보태는, 어디 쓰려도 쓸 데가 없는 딸년 하나가 더 보태지자 우리 식구는 살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나 나의 불시착은 지구가 날 반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커다란 행운이었다. - <박경림의 사람> 중에서 -
박경림은 그런 어릴 시절과 환경이 자신에게 매우 복 된 것이라고 했다. 구파발 무허가집에 살았던 박경림. 어린적에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환경은 사람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모든 생활이 공개되었다. 단칸막으로 옆문만 열면 다른 집과 연결되어서 보호받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집에 가려면 다른 집들을 통해가야만 했다. 대문도 마땅히 없어 동네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만났다. 이때부터 사람에 대한 거리낌이 없게 되었고 살아가는 맛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이다.
가족 관계 딸3, 아들 1.
어린왕자의 불시착처럼 예기치 않은, 의도되지 않은 그녀의 출생은 시작부터가 고난이었다. 막내였던 박경림은 태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이 어려웠던 상황이었고, 아들이 있는 상황이라서 굳이 태어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또한 부모님 역시 연연생으로 내가 태어나게 될지 몰랐다. 어머니는 속이 미식거려서 소화제를 먹었고, 배 속에는 계속 꿈틀거렸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미식거려 회충약을 먹기도 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임신 6개월이라는 것이다. 당시 2.5kg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조금만 말만 안듣으면 부모님은 그때 엎어체야 했다면 농담하신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박경림은 항상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은 어릴 적 환경 자체에 불평한 적이 없다.
그 당시 우리 형편은 누가 거들어 설명해주지 않아도 엄마가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극명할 만큼 어려웠다. 하루 세끼 밥 먹고 학교에 도시락 싸가는 일도 힘들었다. 꼭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나는 동네 떡 공장에서 떡이라도 받아다가 팔아 돈을 모았다. 투정하거나 상처받기에는 우린 너무 가난했다. 그냥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모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열심히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절로 신이 났다.
어머니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해라'이다. 아직도 인사하는 버릇이 있어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게 된다. 인사는 상대방의 어색을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인사를 안 받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인사 안하기보단 인사를 먼저 건내면 그만큼 낫다.
연예계 데뷔 그리고 배려
연예계를 데뷔했을 때 무척 힘들었다. 데뷔 전에는 자신이 부족하거나 평균이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예계는 힘들었다. 다들 내 몸매에서 키, 사각턱, 목소리 하나하나 방해요소가 많다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어느날 김국진 선배가 정말 화가 나고 분하고 힘들 일이 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고 했다. "별 일도 다 있다"'라고 말이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때리고, 힘들게 하더라도 내 스스로 '별 일도 다 있다'라고 생각하니 정말 그렇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겸손' 밖에 없었고 스스로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페르시아 어떤 왕이 '아주 기쁘거나 슬플때 그것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을 찾아와라'라고 명령했다. 일주일뒤 신하가 '반지'를 가져왔다. 왕은 반지 안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적혀있는 메시지를 보면서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사람은 잘되든 안되든 주위사람들에게 상처주면 안된다. 영원한 것도 없고 부하도 없는 것이다.
박경림의 연예계에서 인맥관리에는 정말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녀가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워 인간 관계를 맺었더라면 지금의 연예계의 마당발 그녀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정답이 없다. ‘상대방이 나와 같다.’라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배려하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시도해라. 사람들에게 못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져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 것이다.
본인도 처음 데뷔했을때 잘 나가는 연예인을 봤을 때 너무 부러웠다. 구석에서 그 연예인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스스로 10년 뒤 저 자리에 서있을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피카소 그림과 루느와르 그림 둘 다 아름답다. 다른 기법으로 다르게 접근했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둘다 최고의 예술 작품이다. 모든 것은 같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사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꿈을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투자해야 한다.
자신이 현재 못하는 것에 대해 부모 탓할 필요가 없다. 부모님이 길러주시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경제 공부를 해서 스스로 돈을 모아보자.’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물려준 돈이 있었다면 그냥 흥청망청 썼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과정, 경제를 공부하는 것들은 모두 내 재산으로 남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핑계를 깰 필요가 있다.
질의응답
Q1. 인간관계가 싫어질 경우, 정말 싫은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거나 진실되지 않는 인간관계일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나도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참 밉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말도 많을텐데.. 싫어하는 사람은 그 이유가 있다. 다들 싫어한다. 이런 사람은 그렇구나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설마 이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약점이 있을 것이다. 얘가 저렇게 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인간 관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오늘보고 앞으로 못 볼 사람과 내일도 어쩔수 없이 봐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싫어하는 사람이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피하지 말고 관찰해라. 9개가 나쁜데 1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 점을 칭찬해봐라. 칭찬받고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칭친받으려고 할 것이다. 친해지고나서 단 둘이 있을 때 솔직하게 단점을 이야기 해라.
Q2. 방송 활동에서부터 영역을 넓혀 사업가, DJ, 뮤지컬 프로듀서 등등 많은 일들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당장 지갑에 있는 신용카드를 생각해봐라.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떤 혜택을 주느냐이다. 카드회사는 이것을 연구한다. 어떤 혜택을 줘야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가 먼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맞아야 한다. 나의 경우 평범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사람들이 도움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잘 맞는다.
음반을 내게 된 것은 박수홍씨의 권유였다. 한번 음반 내봐라 했고 나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때 단순히 음반내서 돈을 버는 것이라면 안했을 것이다. 그때 목적은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 음반을 냈던 것이다. 결국 음반 25만장이 팔리고,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스캔들의 여왕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과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그래 스캔들이 필요하다. 나는 연예계에서 가장 큰 스캔들을 만들고 싶었다. 질보다 양이다. 스캔들 클럽 회원들이 6하원칙을 잘 지켜 언론에 보도기사를 보냈다. 18번의 스캔들, 19번째는 오상진 20번째는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정말 무엇을 잘하는지 계속 고민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찾아서 한다.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꿈은 문화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어머니의 경우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분이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 교육을 해 줄 수 있는 문화 재단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Q3. 박경림의 살아가는 원칙은.
철저히 '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단을 결정할 때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해줄까'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림의 2년간 미국 유학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은 결정이라서 모든 것들을 버리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유학을 생각했던 계기는 홍정욱의 7막 7장을 보고나서 중학교때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미국 대사관에 가보니 정말 많은 서류들이 필요했고 내가 갖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유학을 가고 싶어 진심담은 편지를 적어 아버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이틀이 지나 편지 메모로 해서 답장이 왔다.
"미안하다 지금은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니가 아빠를 믿고 대학을 마친다면 그 때는 꼭 보내줄 것이다."
짧은 메모였지만 그 안에 아버지의 슬픔과 자식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었다.죄송스러웠다. 그후 박경림은 대학졸업할 때 자신이 돈 벌어서 간다고 결심한다. 중 1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오로지 목표가 돈이었다. 나름 장사 수완이 좋았다. 고3때까지 알바하였고 어느 정도 돈도 모았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방송에 올인하게 된다. 하루 2~3시간만 자고 5분짜리 코너를 위해 일주일을 사용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돈도 모이게 되었고 졸업할 때쯤 빚도 다 갚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유학기간 필요한 자금을 모아 졸업후 1년 후 미국 유학을 가게 된다. 아무 미련없이 떠났다. 대중이 찾지 않으면 어떻하지라고 고민하지 않았다. 만약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자라고 생각했다. 이는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고 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1시간남짓 강연이 끝났다. 이번 강연을 통해 농담따먹기하면서 웃음을 주는 박경림이 아니라, 인간 박경림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지금까지 있게 하고 앞으로 있게 하는 것은 꿈꾸고 발전하려고 하는 열정과 남을 배려하고 신뢰하도록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꿈이 참 많다고 한다. 내년에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고. 좋은 엄마,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한다.아직 3분의 1도 못하였고 앞으로 계속 도전하고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고 말한다.
임신 5개월이라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지만..질문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변하는 박경림. 박경림의 인간관계의 노하우는 진실함과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배로 더 걱정해 주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먼저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다.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고,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박경림은 진정한 프로라는 생각한다. 앞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애정을 갖고 다가가고자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2008. 9. 18 이화여대 학관 110호 박경림 강연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