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할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100%를 채우지, 안될 수도 잇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넣지 않는다. - 정주영
크게 생각하고 과감히 행동하는 사람.
우연한 기회에 듣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상대는 전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인도로 홀연단신 떠난 민병철씨.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라고 외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말랑쫀득 인도전문가로 민병철씨를 만나봤습니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즐거운 인도전문가를 꿈꾸는 민병철입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에 재학 중 이며 현재 인도현지기업 인턴십을 위해 휴학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2. 말랑쫀득이라 굉장히 신기한데, 무슨 의미 인가요!?
말랑말랑한 두뇌와 쫀득쫀득한 관계를 의미 합니다.
먼저 말랑말랑한 두뇌는 어느 한 시각이나 관점에 갇히지 말고 반대 의견까지도 통합하여 새로운 의견을 내 놓을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저의 의지이며
쫀득쫀득한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데 있어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정말 쫀득쫀득한 긴밀한 관계를 만드려는 저의 또 다른 의지 입니다.

3.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CPA 공부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대학교 초반에는 나름 지성인이라고 이전까지 무조건 배척하던 기독교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한다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이러다 학기 초반에 있는 각종 행사에 참여를 못해 친구들도 제대로 못 사귀고 같이 탈출한 친구 몇 명과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2학년이 되고 그나마 사귄 친구들은 모두 군대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면제를 받아서 학교에 남았고요. 당시 영어회화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같이 하던 선배가 ‘너 군대도 안가면 시간도 버니까 CPA를 공부해라. 요거 따놓으면 나중에 큰 걱정은 없다’며 CPA를 권유했죠. 당시에는 그냥 고민없이 CPA를 따면 인생만사 다 해결되는 줄 알고 무턱대고 그냥 시작을 했습니다. 한 1년 정도 공부를 했습니다.
4. 그러면 왜 CPA공부를 그만 두셨나요?
가장 큰 이유는 공부가 즐겁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대학교를 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속히 말하는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동기부여를 하지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예요. 그러다 결국 대학교에 들어왔고 전공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지금 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제 단지 좋은 회사를 가거나 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는 저에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제 인생에 있어 뭘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죠.
5. 많은 대학생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텐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전까지 그냥 하던 공부들이 모두 의문점으로 다가 왔습니다.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할까’에 대한 저만의 답이 나오지 않으니 공부가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결국 학점은 바닥을 쳤습니다.
또한 저의 이러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줄 만한 선배도 없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답을 혼자서 찾아야 하니까요. 거의 매일 멍 때리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6. 그러다 갑자기 인도를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당시 학교에서 삼성 CEO강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그 강의를 오프라인으로 들을 기회를 얻었고요. 매번 비슷한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전을 세워라.’ 솔직히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비전이죠. 그러다 당시 삼성 SDS 사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경쟁상대는 지금 이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러분들과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전 세계 사람들입니다. 시야를 넓히세요. 세계에는 여러분들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로 나아가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전율이 흘렀습니다. ‘바로 이거구나’하는 느낌. 오바 하면 눈물까지 조금 났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글로벌’,’세계’라는 단어는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와 비전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접한 이 단어들은 단순히 책 속에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결심을 했습니다. ‘세계로 나가자. 내가 할 건 이거구나!’.
그리고 바로 머리 속에서 세계 지도를 펴 놓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나라로 갈 것 인가. 먼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가기가 싫었습니다. 남들이 많이 가는 나라를 가기가 싫더라고요. 남들과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 중 한 나라로 가기로 결정하고 생각을 해보니 먼저 중국이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중국은 이미 우리 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관심이 엄청나 저는 이미 늦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중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죠.
시야를 넓혀 보니 인도가 보였습니다.
브릭스 중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부각이 되지 않았지만 성장가능성이 높은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어는 영어를 사용하니 부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어학연수방식으로 인도에 직접 가서 현지 사정을 알아보고자 인도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7. 인도를 가기로 결심한 뒤 8달이 지난 뒤 인도를 실제 가게 되었네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와 실행으로 옮기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요?
외국을 혼자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인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실행을 옮기는 데 큰 어려움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해본 적도 많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걱정들이 많이 하셔서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무척 긴장되고 몇 일 동안 잠도 잘 못자고 악몽도 꿨습니다. 그런데다가 인도로 가기 2일전에 뭄바이에서 기차 테러가 나서 수백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제가 뭄바이로 들어가야 했던터라 정말 마지막까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주변사람들에게 인도에 간다고 말을 다 해 놨던 터라 안 가면 상황이 이상해지는 지라 결국 인도로 갔습니다.

[맨 처음 인도에 왔을 때(좌), 구루가온 신도시에 방문했을 때(우)]
8.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인도에 간 뒤 처음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1주일 동안 전화기만 봐도 눈물이 나서 가족들과 길게 전화통화를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도의 사정은 정말 안 좋았고 거리 가득한 거지들과 빈민가는 저를 더 참담하게 만들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선 당장은 먹고 살아야 했던 터라 같이 갔던 사람들과 집을 구하고 대학교 부속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인도에 오기 전 미래를 고민 하던 시절에 공부는 안하고 학교에서 본 ‘Friends’가 도움이 되었는지 상급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업이 3시 정도에 끝나는 지라 마땅히 할게 없어 서점에 가서 현지에서 발행되는 경제, 경영 잡지를 1, 2개 씩 사다 봤습니다. 현지 사정도 알고 영어 공부도 할 겸 말이죠.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는데 계속 사다 보니 머리 속에 흐름이 생겼고 주변 환경도 달라 보였습니다. 다니면서 현지에서 잘 팔릴만한 제품들도 수첩에 정리해보고 현지인들의 생활습관, 종교 행사들을 보며 이를 어떻게 기업활동에 연계시킬 수 있을까 하며 나름대로 저만의 개똥 철학을 만들어나갔죠.
그러다 잡지에서 성장하고 있는 도시나 지역이 나오면 비행기를 타고 가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딱히 관광지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더라고요. 델리에서도 전철을 타고 종점까지가 보았습니다. 솔직히 종점에는 사막에 아파트 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에게는 인도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였습니다. 그리고 차를 빌려 구루가온(Gurugaon)이라는 신도시에 가 그 도시에 있는 쇼핑몰을 다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9.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낮에는 인도잡지를 보면서 현지 소식을 접하고 Friends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밤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사람들끼리 미래에 대한 꿈도 이야기 하고요. 그 곳에서 저를 버티게 해줬던 건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적어도 제가 원해서 온 것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뭄바이 한국상품전 큰 행사에서 스태프(STAFF) 했을 때의 모습]
10. 인도에서 1년 뒤 우연한 기회에 통해 현대 자동차 인도 법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지내던 도시가 푸네(Pune)라는 곳인 데 그 곳에서 저희가 반찬을 사 먹는 교민 분이 뭄바이 코트라 주재원분과 친분이 있으셨습니다. 자주 그 곳에 놀러오기도 하셨고요. 그러면서 뭄바이에서 한국상품전이라는 큰 행사를 하는데 통역하는 사람과 일을 도와줄 스태프가 필요하다며 푸네 지역에 있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을 했습니다.
푸네 지역에 학교가 많아 유학생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면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체력이 걱정된다며 저는 통역도 아니라 스태프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살면서 저의 노력과 열성을 높게 산 형이 저를 적극 추천해 막판에 뭄바이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에 도움을 주던 분 중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에서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인도 현지 IT기업에서 일을 하시던 분이었죠. 그 분이 계신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가 IT산업과 의학산업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는 도시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던 곳이었습니다.
참여했던 유학생 중 저만 알고 있었죠. 잡지를 통해서 많이 들었거든요. 그 분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좋은 인상을 심어 드렸나봐요. 행사 막바지에 자신이 현대자동차 인도 법인장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공장이 있는 첸나이(Chennai)에 갈 건데 혹시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저에게 제의를 했습니다.
당연히 가야죠. 그 분을 만나기 위해 하이데라바드로 비행기를 타고 갔고 그 곳에서 다시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첸나이에 가 이력서를 내며 저도 같이 면접을 봤습니다. 결국 그 분은 전략기획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저는 총무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월급은 현지인 수준이었지만 돈이 문제 겠습니까.

[현대자동차 인도 법인에 있었을 때의 모습]
11. 현대 자동차 인도 법인에서 무슨 일을 하셨고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총무팀에서 매니저로 현지 지원업무와 의전, 출장자 관리 등의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불만이 많았습니다. 나름 배운 것도 있고 현지에 과한 지식도 많은데 총무팀에서 인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말이죠. 한국에서 출장오신 생산직 분들과 싸우고 말을 잘 안드는 현지인들 때문에 가운데 껴서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총무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먼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사장님, 교수, PD, 기자, 학생들, 생산직, 특히 생산라인으로 출장오시는 분들을 관리하면서 사람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해외법인 운영에 있어 중요한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많이 배운 것 입니다. 총무 일을 하면서 차 만드는 것 빼고 거의 다 해본 지라 정말 많은 내부 조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현지인들과 교감을 하며 책 속에 있는 지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줄일 수 있었고 이는 저의 꿈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얻은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액센츄어 HR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12. 인도에 있을 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인도통신원 역할을 하셨는데 생소하네요. 어떤 일을 하신 건가요?
현대자동차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도 계속 잡지를 구독했습니다. 오히려 숫자가 들었죠. 일 때문에 거의 볼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슈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푸네 교민사이트에 인도통신원을 모집한다는 공모를 보고 원래 잡지를 보면서 현지 관련 소식들을 보고 있던 터라 현지 인도통신원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2달에 한 번씩 인도 현지에서 발생하는 유통, 소매관련 소식을 정리 분석하여 한국 체인스토어협회에서 발행하는 리테일매거진에 해외통신 인도부분을 맡아 글을 실었습니다.
이 일을 2년 정도 하면서 인도리테일시장에 대한 지식도 많아져 이번에 인도 컨설팅 기업인 Technopak에 지원하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아직 발표는 안 났는데 잘 되겠죠!?
[매일경제에서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 참가 - YKL 활동 했을 때의 모습]
13. 매일경제신문에서 ‘인도에서 세계지식포럼을 신청하다’라는 민병철씨에 대한 기사를 읽을 적이 있습니다. 세계지식포럼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나요?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일을 하면서 인도 생활에 약간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 세계지식포럼 신청 기간이 휴가 기간이라 마음까지 들떴었죠. 저도 이 틈에 좋은 나라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했었는데 어느 날 저를 현대자동차로 데리고 오신 분이 YKL 관련 글을 보여주시면서 신청을 권하셨습니다.
당시 주제도 ‘Wealth Creation & Asia’라 너무나 가고 싶었죠. 인도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적었는데 운이 좋게 당첨이 되었습니다. 당첨되고 나서 회사에 소문이 나서 용돈도 조금 받았습니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안고 한국에 잠시 귀국을 했었습니다.
14. 그렇다면 민병철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즐거움’입니다.
이는 기쁨과는 다릅니다. 기쁨은 어느 한 순간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지만 즐거움은 만족에서 오는 즐거움이죠.
수 백 년 수 천 년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보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의미한 재미 추구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목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목표는 자신이 직접 설정한 목표여야 하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저는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5. 민병철씨에게 있어 배울만한 인생 멘토나 롤모델이 있나요?
애석하게도 저는 롤 모델이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절대적을 따른 다거나 하는 것은 사고의 방식이 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어 저는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닮고 싶은 성향의 모델은 있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회장의 자신감, 스티브 잡스의 자기자신에게 솔직해 지기. 같은 이야기 인가요!?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레게머리를 한 뒤 GE-맥킨지 리더십 워크샵 참가했을 때]
16. 두 분을 특별히 선정하신 이유는요?
먼저 스티브 잡스는 제가 제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절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연설 내용 중 시간의 제한성을 알리며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라는 그의 호소력 짙은 연설은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제 자신에게 집중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감명 받아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드레드(일명 레게머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머리로 GE-Mckinsey Leadership Workshop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다음 고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일화는 많이 들어서 알고 계실거예요. 그 중 제가 가장 종아하는 어록이 있습니다. “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10%를 채우지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다.” 이 구절은 자신감이 결여된 시점에 항상 자신감을 충전시켜 주고 있습니다.
위의 두 분이 하신 그 구절은 제가 매직으로 제 방 벽면에 써 놓았습니다. 매일 매일 보려고 말이죠.
17. 민병철씨 살면서 어려움이나 실패한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앞에서 말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고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같습니다. 정말 인생 편하게 살다가 크게 낙담을 한 시기 였죠. 방황하던 시절에 내 인생은 결국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던 만화나 프렌즈는 계속 보았던 것 같네요. 지금 이들은 저의 상상력과 영어회화의 기본이 되었고요.

[민병철씨 방 벽에 붙여있는 정주영 어록]
18. 좌우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원피스’의 한국주제가 중 일부분 입니다. 저를 눈물 짓게 한 유일한 만화주제가. 한 번 가사를 음미해보시면 인생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구절은 항상 꿈에 대한 열정과 초반에 느낀 전율을 잊기 않게 해주어 나태하고 자칫 자만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고 있습니다. 원피스라는 만화의 내용을 이해하신다면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19.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7세 이하의 유아용 만화를 좋아하죠. 케로로 같은. 이런 만화들은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줍니다.
예를 들어 충치를 자그마한 외계인의 침략이라 보고 직접 몸이 작아져 입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전쟁을 해 승리를 해야 충치를 치료할 수 있다고 어느 누가 생각을 하겠습니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어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20. 민병철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의 꿈은 인도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국적에 상관없이 인도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 관련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점점 시장이 개방되면서 인도현지에 진출을 하려고 하지만 마땅한 전문가도 부족하며 인도인들의 비즈니스 스타일이나 문화, 현지인들과의 교감 등 소프트적인 요소들처럼 단기적으로 체득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아 투자가 철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도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고 그들과의 교감을 즐기는 저에게는 가장 좋은 꿈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항상 제가 모르는 저의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한가지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현재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몸소 느낀 것이지만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기회는 얼마든지 오니까요.

21. 대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고려한다며 이를 감추고 있고 또한 대부분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학점과 영어성적을 올리기 전에 먼저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한, 정말 진지한 고민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고민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은 후에 미래를 설계해도 결코 늦지 않으며 저는 이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정을 하셨으면 절대적으로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시면 저절로 길이 열릴 겁니다. 정말로요.
22.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해주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가웠습니다. 유니멘토의 무궁한 발전을 기약하고요. 인도 시장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연락주세요.
:: 유니멘토 인터뷰팀 2009년 4월 21일자
씨앗프로필
이름 : 민병철
소속 : 성균관대 경영학과
연락처 : 010-5057-5133
이메일 : indochandler@gmail.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ceipheid
정말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든 모습이 멋있어요.
인도 전문가...
인도에 관해서 무엇이든 물어보면 되나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군요. 그럼 그날까지 서로 파이팅 합시다.ㅎㅎ
꼭 인도 전문가를 되셔서 한국을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원피스 정말 좋아한답니다 +_+b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꼭 하고 싶은 일 이루시길 바랍니다.
병철씨 인터뷰를 보니까 용기를 내서 인도에 가볼 걸 그랬네요. 고생도 많으셨겠지만 많은 것들을 배우셨겠어요^^
좋은 글 읽고 덕분에 많은 생각들을 하고갑니다~
화이팅!!*^^*







병철오빠의 인도 얘기도 많이 듣고 칼럼도 읽고 오빠가 게시판에 쓰는 글도 많이 봤지마 정작 얘기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듯해서 아쉬울뿐 ㅋㅋㅋ
인터뷰 잘 읽고 갑니당+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