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십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일컫어 생활의 달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개발자로서 최고의 달인이 되고 싶은 권신희씨를 만나봤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향기가 품어져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긍정적인 유전자를 가진 그의 이야기를 듣어 보도록 합니다.
[키워드 1 - 직성을 찾아서]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일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프로그래머 권신희입니다.
2. 어릴 적에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하셨는데, 학창 시절의 모습이 궁급합니다. 어떤 학생이었나요?
경제적으로는 많이 어려웠어요. 인간극장에 나오는 정말 힘들 분들과 비교하면 저도 어려웠다는 말이 부끄럽지만 학교 다니면서 저보다 힘들게 다니는 친구들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공부와 일을 한꺼번에 할 정도로 뛰어나지도 않아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는 못했어요. 대신 장학금 받을려고 노력을 했고 방학 때면 일을 하면서 다음학기 생활비를 벌었어요. 물론 공부와 일만 한 것은 아니구요.
운동을 좋아해서 시간나면 농구 동아리 친구들과 농구도 하고 시합도 나가면서 나름대로 대학생활을 즐기는 학생이었죠.
3. 수능 실패 후 재수에 도전하셨는데, 재수 후에도 원하는 학과보다는 점수에 맞춰 가게 되었는데요. 인생의 전환점으로 전과(재료공학부 → 컴퓨터학과)를 말하셨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입학 전에 점수에 맞춰서 입학을 하고 그 이후에 맘에 안 들면 전과를 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라고 한다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코딩을 하면서 프로그램이 완성되었을 때 희열을 느끼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어요.
당시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수업이 공과대학의 기초 필수 과목이어서 전공 과목이 아니었는데 전공 과목 공부는 하지 않고 프로그램 과목에 더 많은 공을 들였어요.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이 내길 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꿈을 키워나갔던 대학시절]
4. 아직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막연히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고, 대학생들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 무작정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권신희씨의 경험에 비춰 어떻게 적성을 찾게 되었는지 듣고 싶네요.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노력한 것보다 낮은 점수 때문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물론 제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일에 만족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만 해도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방황하고 있다면 일단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봐야해요. 열심히 하다 보면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될 확률은 높아질 테니까요.
저 또한 어쩔 수 없이 점수에 맞춰서 진학했다는 패배감에 젖어 학교를 다녔다면 전과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일단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모든 수업에 전념하다가 컴퓨터 수업에서 특히 재미를 느껴서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냥 시간만 보내다가 어느 순간 취업할 시기가 다가 오고 취업은 해야겠기만 스펙 높이기에 급급하다 보면 직장마저도 진정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는 더 힘들어 지겠죠.
5. 권신희씨가 살면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멘토가 있나요.
저희 외할머니예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외할머니께서 저를 키워주셨죠. 언제나 옆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어요.
외할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셔서 허리도 많이 굽으시고 주름도 많이 깊어지셨죠. 저 때문에 더 빨리 늙으신 건 아닌지…
앞으로 더욱 효도하면서 살려구요.
6. 본격적으로 대학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하셨네요. 그것도 1년간 공백 기간 있었는데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당시에는 두려움 그 자체였어요. 물론 재수 시절의 실패도 있었지만 그것은 저의 실력 보다는 시험을 잘 못쳤다는 것으로 합리화가 가능했었죠. 하지만 전과를 하고 군에 다녀와 복학을 한 후의 학과 수업에서는 정말 무기력한 저의 모습에 낙담하였습니다.
전과를 하기 전에는 프로그램 수업이 1과목이었고 전공 과목이 아니었기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가르쳐 준 반면 전과를 한 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과목이 프로그램 과목이었고 언어에 대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은 채로 과제가 나오는 형식이었죠. 걷지도 못하는 때 바로 뛰고 날아라라는 식이었어요.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더군요. 두려움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 그게 유일한 방법 이었어요. 참~~~ 쉽죠.
7. 군대시절 전산병이었는데, 그 당시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주면 몇 점을 주고 싶고, 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전산병이었지만 2년 동안의 근무 중 1년 넘게 삽질만 한 기억이 있어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동안의 삽질. 사령관의 제대 직전 업적을 남기기 위한 작업으로 연변장 보수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중장비로 1주일이면 끝나는 일을 인력으로 1년 동안 했죠.
당시 일병이었던 쉴 틈도 없었어요. 특히나 내무반과 근무처가 달랐던 저는 내무반 작업에 신경 쓰느라 군무원과 근무하던 근무지에서 항상 눈치를 보면서 나와야 했고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서 구박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근무지 점수는 50점, 내무반 생활은 100점을 주겠습니다.
[좌- 대학졸업사진, 우-대학 4학년 시절 여행을 떠나기전]
[키워드 2 - 프로그래머가 되기까지..]
8. 군 제대 후 남들은 편한 일자리를 찾기 마련인데 막노동을 3개월이나 하셨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먹고 살아야 했어요. 제대 직후 어렵사리 과외를 구하고 3개월 동안은 월 150~200만원 정도 벌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르치는 것을 좋아는 했지만 제 욕심에 학생들을 너무 다그치고 막말로 빡세게 시킨 결과 성적이 급격하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꺼번에 모두 그만두게 되었죠.
그렇게 되고 나니 막막 하더라구요. 아버지 사업 실패 때문에 저와 형 앞으로 빚이 좀 많이 있었는데 그것도 갚고 저도 생활을 할려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그 뒤로 과외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보통의 아르바이트는 턱없이 작은 보수 때문에 하기 싫었죠.
그래서 하게 된 게 막노동이었어요. 당시 3개월 동안 숙식을 제공받았고 생명수당을 받으면서 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10Kg 의 드릴과 5Kg 의 망치, 5Kg의 못, 합이 20Kg인 장비를 몸에 두르고 70미터의 산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하며 산에 못을 박던 게 새삼 기억이 나네요.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군 시절 했던 삽질 덕분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9. 학교 복학 한 뒤 하루에 2~3시간 밖에 잠을 못 자고 프로그래밍에 매진하셨네요. 처음 프로그래밍 실력이 140명 중 꼴지였다가 몇 달뒤 10등 정도의 실력이 된 비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죠. 이러 저러한 것을 떠나서 프로그램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제 자신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힘들게 전과까지 했는데 학교는 다녀야 했기에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첫 과제는 친구가 전부 코딩을 해 주었죠. 저는 열심히 분석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봐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두 번째 과제를 낼 때쯤에는 뼈대만 짜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친구의 도움을 줄여 나갔어요.
당시에는 죽을 정도로 했어요. 물론 그렇게 해도 죽지는 않더라구요. 한달동안 10Kg이 빠졌던 적도 있었어요. 일주일동안 제 방에서 누워서 잔 시간이 10시간 정도 밖에 안 되었던 적도 있었구요. 그나마도 잔 이유는 잠이 와서가 아니라 자야했기 때문에 억지로 잤어요.
오랫동안 코딩을 하게 되면 머리 회전이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잠을 자야 했죠. 1~2시간이라도 자고 나면 다시 아이디어가 떠 오르거든요. 물론 당시에는 제 실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과제를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죠. 
[퀄컴 본사 방문 교육 및 IT 투어 모습]
10. 2006년에 우수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미국 샌디에고에 소재한 퀄컴 본사 방문하는 ‘퀄컴 IT Tour’ 에 선발되셨네요. 어떤 주제로 지원하게 되었고 이 활동을 통해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제안서의 주제는 ‘한국에서의 모바일 TV의 성공 가능성’이었어요. 사실 제안서를 쓰기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주제였어요. 제가 지원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공짜로 미국 한번 가보자라는 마음이었어요.
당시 저는 외국에 갈 형편이 안 되었죠. 저에게는 어학 연수나 외국 여행은 사치에 불과했어요. 당장 하루하루 밥 먹을 걱정이 앞섰고 버스 차비 몇 백원도 아껴야 하는 형편이었거든요. 근데 제안서만 잘 쓰면 미국 보내준다는데 눈이 뒤집혔죠.
그때가 4학년 1학기였는데 처음 전과했을 때 코딩하는 것처럼 미친듯이 준비했어요. 그리고 운 좋게 합격을 하게 되었죠. 합격을 하고 미국에 가서 샌디에고의 퀄컴 본사와 LA 등을 돌아보고 같은 맴버들과 얘기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나와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만 저보다 훨씬 원대한 꿈을 가지고 도전을 하면서 자신의 개발해 나가는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았죠.
11. 흔히 컴퓨터 공학과에서 프로그래밍을 짰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해커처럼 컴퓨터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권신희씨에게 있어 프로그래밍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코딩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자료를 찾고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입하고 대입했을 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보물을 찾기 위해 보물 지도를 찾고 보물 지도로 보물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문제가 해결 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희열을 느끼게 되죠. 남들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힘이 든다고 하는데 저는 힘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해결하고야 말겠어” 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런 거보면 정말 천직인 것 같아요.
12. 프로그래머가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특별한 자질들이 있나요?
특별한 자질이라… 밤샘을 밥 먹듯이 할 수 있고 며칠 동안 짰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짤 수 있는 화끈함 ?? 농담이구요. 무슨 일이든 자신이 좋아해야겠죠. 자신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는 일단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구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좋아할 확률이 높을 것 같긴해요. 뭔가를 풀고 해결했을 때의 희열을 똑같이 느낄 수 있거든요.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고 있는 권신희씨]
13. 프로그래머라고 하며 젊은 시절에 잠깐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직급과 레벨에 따라 코딩에서 관리로 되는데, 미국의 경우 이와 다른 체제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듣고 싶네요.
어느 나라나 코딩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래머의 지위가 가장 낮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코딩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코딩에 그치는 수준이죠. 미국의 경우 코딩에 그치는 수준이 아닌 시스템 전반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는 수준의 코딩을 하는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더욱 빛을 발하게 되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 엔지니어들이 드물기도 하고 대우 받기도 힘든 것 같아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프로그램의 깊이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적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IT 회사는 프로그램이 중심이 아닌 업무가 중심입니다.
휴대폰만 보아도 기술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전자적인 부분이지 프로그램 부분이 아니예요. SI 업체의 경우도 시스템을 개발할 때 업무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얼마나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은 업무를 모르는 사원 때는 코딩을 하고 지위가 높아지고 업무를 알게 되면서 분석, 설계, 관리의 형태로 직급별로 일이 나뉘게 되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엔지니어를 양성할 수 있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것이예요.
14. 평소 궁금했던 것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구글이 왜 미국 시장에서 커질 수 밖에 없나요?
이건 어디까지 제 사견이니 실제와 다를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셨으면 하네요. 검색 엔진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 예요. 첫째는 검색 결과의 정확도이고 둘째는 검색 속도라고 생각되요. 구글은 텍스트(Text)로만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사용자환경(UI, 유저인터페이스)를 통해 페이지가 로딩되는 속도를 최소화시켰죠.
내부적으로는 검색하다(search) 대신 '구글하다(google)' 라는 단어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검색 알고리즘을 통한 결과의 정확도를 향상시켰어요. 또한 그리드 네트워크를 이용한 검색 속도의 향상도 큰 몫을 차지한 것 같아요. 이러한 장점은 특히나 미국의 인터넷 환경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죠.
미국은 땅덩어리가 어마어마 합니다. 아무리 부유하다고 할지라도 비싼 광케이블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기에는 역부족이겠죠. (우리나라, 홍콩,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인터넷 인프라 구축이 잘되어 있는 것은 이와 반대이기 때문이겠죠? )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는 모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모뎀을 사용하는데 네이버와 같이 첫페이지를 띄우는데만 해도 최소 10개 이상의 이미지와 5개 이상의 플래쉬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야 비로소 검색이 가능하다면 사용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URL을 입력하자 마자 페이지가 뜨고 검색을 하자마자 결과값이 나오며 그 결과의 정확도까지 최상인 구글. 성공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프로그래밍은 나의 놀이다. 즐기면서 일하기에 행복하다.]
[키워드 3 - 향기나는 사람 즐기면서 일하는 행복한 달인]
15. 지금은 현대유엔아이 부산신항 TFT팀에서 시스템 개발을 하고 계시네요. 좀더 자세히 어떤 일들을 하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현재 하는 일은 컨테이너 터미널의 시스템을 개발중에 있어요. 컨테이너 터미널은 제품을 담은 컨테이너를 배에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곳 이예요. 이때 컨테이너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고 작업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 중에 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OS(Operating System)을 Window를 쓰듯이 터미널을 운영할 때 TOS(Terminal Operating System)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 TOS가 현재 제가 개발하고 있는 시스템이죠.
16. 권신희씨를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무척 즐기면서 하고 있네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즐기면서 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비결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놀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예요. 워낙 코딩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현재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은 코딩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사가 일을 시키면 자기 만족감에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 할려고 노력하게 되고 되었어요.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될 때도 상사가 시켜서라고 보다는 제가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게 되었고 이런 모습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직장에서 인정받게 되었어요.

[좌 -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 우 - 직장동료들과 함께]
17. 권신희씨 커리어로서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직급별로 목표를 정한게 있어요. 대리 직급에서는 전자계산 조직 응용 기술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고 과장 직급에서는 MBA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예요. 그 이후에는 아직 미정이예요.
이 외에도 블로그에 저의 프로그램 노하우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 책을 쓰는 것 등도 제 목표예요. 현재는 일하기 바쁜다는 핑계로 구체화하지는 못했지만 6월을 기점으로 제 자신을 가다듬을 시간을 새로이 가지려고 합니다.
18. 권신희씨의 꿈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시나요?
시스템 프로그램머로서 달인이 되는 것이 제 꿈이예요.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자마자 어떤 것이 문제라고 말 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달인. 생활의 달인을 즐겨 보는데 그분들처럼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그 일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향기나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하지만 현재의 제 모습을 보면 아주 많이 모자라요. 이것 저것에 불평을 할 때도 많고 일적으로 짜증을 내는 것도 많거든요. 평생 도를 닦듯이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19.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는 말을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요. 우선 자신이 너무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죠. 나아가 그런 모습을 보고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확률도 높아지거든요.
어떤 경우는 하늘이 도울 때도 있더라구요. 현재 공부하기 힘들거나 취업난에 고심중인 분들도 지금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현재 이 자리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자리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으면 해요.
큰 문제건 작은 문제건 그것을 해결하고 성공하는 것을 여러 번 거듭할수록 성공이 쌓이게 되어 자신의 삶 자체를 성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같이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아보아요.
:: 유니멘토 인터뷰팀 2009년 3월 24일자
씨앗프로필
이름 : 권신희
소속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 현대유엔아이(주) 현대상선 정보기술팀
연락처 : 010-5096-4018
이메일 : hoochi2000@nate.com
좌우명 : 내가 믿고 가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다
정말 대학 시절에 자신을 원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노가다를 하면서 학비 벌고, 하루 2~3시간 밖에 안자면서
공부했다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사회 3년차인데, 회사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는데
권신희씨 인터뷰 보면서 자극을 받네요.
앞으로 꼭 개발자로서 달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그런 면에서 권신희한테 많이 배울만하네요.
앞으로 더욱 성장하는 권신희씨가 되세요.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