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여행 8일째 날이다. 원래 일정에 함평은 없었지만 나비가 보고 싶었다. 내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나비의 날개짓, 그 안에서 상상의 나래 펼치는 가군을 상상해보면서 나는 장성에서 함평으로 이동한다.
24번 국도를 따라 40여 킬로를 달려 함평 나비곤충 엑스포 공원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5시 35분. 다행이다. 6시에 문을 닫는데,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들어온 것이다. 땀 범벅이 된 나.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지만 함평을 알리는 이정표와 곳곳에서 보이는 나비 무늬들이 함평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함평이라는 이름 첫 자 ‘함(咸)’이 두루 미치어 충만함을 뜻하고 ‘평(平)’이 모두가 고르고 화평한 상태를 이르니 두 글자가 합쳐져 이루어진 함평이라는 말이 근심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내고 있다. 함평 인구는 3만 8천명인데 이 중에서 농사 짓는 사람이 70% 정도나 된다.
이런 촌구석 함평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나비 축제를 열게 되었을까. 나의 호기심 말초신경을 건드린다. '호기심 가군의 안테나'에 걸린 이상 물러선 가군이 아니다. 제대로 파헤쳐보기 결심하고, 함평 엑스포 공원, 함평 군청, 시내를 돌아다니면 나비의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3무(無)의 고장에서 나비의 고장으로 

10년간 KBS PD로 있었던 이석형님이 함평 군수로 당선되고 나서 첫 작품으로 나온 것이 바로 1999년 1회 나비 축제이다. 함평은 천연자원과 관광자원 그리고 산업자원이 없는 3무(無)의 고장이다.
특히 IMF가 지난 지 얼마 안되었고, 재정 자립도도 12%로 열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꽃을 활용한 '유채꽃 축제'를 열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유채꽃이라면 제주도가 떠오른다. 함평에서 축제를 한다 하더라도 관광객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비'였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나비 축제는 없었고, 어린이가 오고 싶어하면 어른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반대와 무관심에 부딪혔다. 생전 듣어 보지도 못한 나비 축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39세였던 그에게 '젊은 군수가 사고친다'고 반대하였지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함평이야말로 '나비' 축제의 적임지라는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나비찾기 대작전에 들어간다.
제주도에서 나비를 공수해 오고, 교배과정을 거쳐 수만 마리로 증식시킨다. 이런 과정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함평군 곤충 연구소도 설립하고 나비 전문가도 영입한다. 하나하나 함평 나비 축제 준비가 되어간다. 그리고 드디어 1999년 5월 5일 '나비와 꽃의 세상' 1회 나비 축제를 개최한다.
개막식날 함평으로 오는 도로는 관광객 차로 마비가 되었다. 그 해 6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대 성공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가보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리더는 이럴 때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가는 것이다. 무모함이 아닌 확고한 비전과 신념을 갖고 먼저 뛰어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시작한 쾌거이었던 것이다.
5만 5천명 vs 6만 700명




뜬금없이 숫자라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번 두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리해보자. 두 중 하나는 함평 나비 축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그럼, 친철히 답을 알려주면..
두 수치 모두 재작년 2008년 5월 5일 방문객 수이다. 5만 5천은 애버랜드 어린이날 방문자 수이고, 6만 700은 함평나비축제 어린이날 관광객 수이다. 솔직히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 최고 테마공원이라고 볼 수 있는 애버랜드를 뛰어넘을 정도로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이자 창조의 현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함평 나비 축제는 '함평 = 나비'로 만들었다. 세계 유일의 곤충을 소재로 한 환경 엑스포를 개최하였고 지금까지 1,217만명이 함평 나비축제를 다녀왔다. 엄청난 수치이다. 무엇이 우리를 나비에 열광시키게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나비를 통한 감동과 경험의 가치를 제공하였다. 단순히 전시장의 나비와 곤충들을 구경하듯이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나비곤충생태관에서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통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나비와 곤충의 생태. 그 작은 세계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꿈을 키웠고, 어른들은 내일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곤충, 인간 그리고 환경의 조화를 통해 마음 속 꼭꼭 숨겨진 동심을 깨워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 것이다. 살아있는 나비의 날개짓은 감동으로 전해지고, 몇 번이고 다시 나비 축제를 찾게 만든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다채로운 조경과 시설 그리고 완벽한 전시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함평군 공무원과 함평 군민, 자원봉사자가 만들어낸 합동 작품이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 부서별 토론회가 열렸다. '나비 생태관과 가축체험장을 만들자. 가축몰이 체험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규정에 없다. 예산이 없다. 가능성이 없다.' 등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그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안 된다'라는 마음 하나만 바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국보 한점없는 함평을 창조적 경영 행정의 모델, 4계절 생태 관광의 메카로 만든 것이다. 이들의 작품들을 보면 '초대형 나비 철쭉 동산, 미꾸라지 잡기 체험장, 누에체험 학습장, 국화축제' 등 함평을 생태녹색체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이는 믿고 따라온 함평 군민과 자발적으로 참여해준 자원봉사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가장 함평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야기 하나. 162kg짜리 초대형 황금박쥐.
천연 기념물 제 452호로 지정된 황금박쥐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1999년 함평군 고산봉 일대에서 황금박쥐가 집단 서식하는 것을 발견되었다. 상징적 의미로 황금박쥐 조형물을 제작할 목적으로 1톤의 순금 구입을 군 의회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고 가까스로 162kg을 구입했다. 제작 당시 혈세를 낭비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재급 명물로 함평의 이미지와 수입을 올리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야기 둘. 나비의 감동으로 얻어낸 함평 상해 임시정부 청사.
함평에 상해임시정부청사가 있다.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상해 임시정부의 건물이 함평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실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만들려고 하는데 돈이 없었다고 한다. 6월 6일 현충일 행사 때 나비를 뿌려 묘지 앞을 날아다니게 하였다. 그 광경은 감동 그 자체였고, 보훈처장의 마음을 움직여 예산을 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 셋. 뱀도 이제는 관광상품.
나비와 곤충에다 이제는 뱀도 함평의 자랑거리로 될 듯 하다. 함평군 신광면 가덕리에 뱀 주제 전시관, 파충류 생태관, 악어 연못이 있는 생태공원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진짜 뱀이랑 악어랑 거북이들이 또 다시 우리를 유혹하게 하는 것이다.
사계절 꽃, 나비, 뱀, 황금박쥐.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정도이다. 아이디어의 힘이 느껴진다.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다르게 바라보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함평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 말이 핵심인 듯 하다. 내 지역의 장점이 무엇이고,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색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기에 '나비'라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함평이 가진 최대의 장점인 청정 무공해를 나비와 접목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나비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단지 거기에서 끝났으면 수많은 지역 축제 중에 기억되지 않는 축제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평은 달랐다. 지역 전체를 나비 컨셉으로 전부 바꿨다. 넥타이, 교량, 건축물을 비롯해 농산물, 쓰레기통, 음식점 수저까지 모두 나비를 새긴다. 오히려 나비가 안 그려진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장기적인 안목과 창조적 파괴. 독창적 정체성이 돋보인다.
나에게 주는 울림은 무엇일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고, 끊임없이 주변에 있는 것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함평의 힘.
나비의 작은 날개짓.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2010. 2. 2 오전 5시 20분 서재에서




